
명량 (2014)
감독 : 김한민
출연 : 최민식(이순신), 류승룡, 조진웅
명량해전이 일어난 역사적 배경
임진년에 왜군들의 침략으로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20일 만에 수도 한성이 함락됩니다. 그러나 바다에서는 조선 수군의 승리를 이어갑니다. 이순신의 활약으로 일본의 조선 침략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결국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남해로 급하게 일본 수군을 파견합니다. 1592년 7월 견내량에 왜선 70여 척이 결집합니다. 견내량의 협소한 위치에 있던 왜선을 넓은 한산도 바다로 유인에 성공하고 학익진을 펼쳐 적을 전멸시킵니다. 1592년 8월 14일 통영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한산대첩입니다. 일본 수군은 전라도 앞바다 지역을 감히 넘지 못하고 더욱이 1592년 10월 일어난 부산포 해전으로 일본군의 본거지인 부산포에서 일본군 함대와 대립한 결과 120여 척을 격파시켰습니다. 궁지에 몰린 일본은 간첩을 활용해 조선 제14대 국왕 선조에게 거짓 정보를 흘리고 선조는 이순신에게 공격 지시를 하지만 일본의 계략을 눈치챈 이순신은 전략을 다하지 않습니다. 이에 분개한 선조는 신하로서 임금을 속인 죄로 질책하였고, 더불어 원균이 선조에게 장계를 올려 이순신의 파직을 부추겼습니다. 선조는 이순신을 파직시키고 원균에게 제2대 조선군 삼도수군통제사 임명합니다. 그러나 원균이 이끈 조선 수군은 임진왜란 최악의 패전이라고 불리는 1597년 8월 칠천량 해전으로 12척만 남기고 모조리 침몰시켰습니다. 조선 수군의 침몰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7년 8월에 바로 대대적인 공격을 가하는 정유재란이 시작됩니다. 선조는 다시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시켰으나 이순신에게 아무런 지원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전라도 지역의 돌아다니며 수군을 모았지만 명량해전 당시 13척의 판옥선만 남아 있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1545년 ~ 1598년)과 선조
국보 76호 난중일기는 1592년 1월에서 1598년 11월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직전까지의 군중 생활을 기록한 친필일기로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로도 등재되었습니다. 이순신 뚜렷하게 각인되는 공정, 정직의 아이콘으로 이조판서 율곡 이이 와의 만남도 거절한 인물로 혹여나 인사권에 대해 의심할 수 없게 어떠한 여지도 주지 않고 정직한 자신의 신념을 지켜냅니다. 한산대첩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해전 금지령을 지시하고 한산대첩의 공으로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됩니다. 승기가 조선으로 넘어오게 되고 임진왜란 1년 만에 한성도 되찾게 됩니다. 해전 금지령으로 이순신은 일본군과의 휴전이 길어지고 이때 선조는 이순신에 대한 불신을 키워갑니다. 평소에도 이순신을 탐탁지 않았던 선조에게 일본 첩자로부터 거짓 정보가 흘러 들어가고 선조는 이순신에서 출전을 지시하는 왕명을 내립니다. 그러나 거짓 정보임을 알고 있던 이순신은 무턱대고 출전하면 조선의 수군이 당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왕명을 따르지 않습니다. 결국 선조는 분노하고 체포 명령을 내립니다. 신중히 사태를 파악 후 뒤늦게 출전을 결심하지만 1597년 2월 왕명에 불복종했다는 죄목으로 의금부로 압송됩니다. 53세의 나이에 모진 고문을 받습니다. 그리고 투옥된 지 28일 만에 풀려납니다. 그러나 사형만 면했을 뿐 선조는 이순신의 죄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파직당한 이순신은 권율 장군의 본거지에 합류하기 위해 백의종군하여 합천 초계로 향하던 중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들이 옥에 갇혔다는 소리에 노령의 어머니가 한성으로 이순신을 만나러 오던 중 법성포에 정박한 닻줄이 풀리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1597년 7월 선조의 명으로 원균은 부산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하기 위해 판옥선 160여 척을 이끌고 출전하지만 대패를 당하고 조선 수군이 궤멸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순신은 큰 충격에 빠집니다. 결국 해상 진출로를 일본 수군에게 내어주게 된 선조는 다시 이순신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시키고 이순신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은 채 순순히 선조의 명을 받아들입니다. 선조는 또 이순신에게 수군의 전략이 약하니 권율이 이끄는 육군 부대에 합류하라고 교지를 내리지만 일본 수군의 더 이상 해상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막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수군으로 일본과 대적하기로 결심합니다. 칠천량 해전에서 도망친 판옥선 12척으로 수군을 재정비합니다.
영화 명량 이야기
칠천량 해전으로 많은 수군을 많은 병사들을 잃게 되고 그나마 살아남은 병사들 사이에서는 탈영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순신은 군율로 탈영을 엄히 다스립니다. 잠을 청하는 중 자객이 나타나 이순신을 해치고 거북선에 불을 납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조선군으로 12척의 배로 전쟁에 나서려는 무모한 이순신을 없애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뿐인 거북선은 불에 모두 타버렸습니다. 울며 돌아가는 길목이라 불리는 울돌목을 바라보며 전쟁에 승기를 가져올 수 있는지 생각에 잠깁니다. 그때 일본군에 심어놓은 첩자를 통해 일본군의 출정 소식을 알게 됩니다. 일본군은 수백 척의 함대를 전라도 바다로 진격시켰습니다. 이에 선조는 이순신에게 수군을 포기하고 육군 합류를 지시하지만 아직 12척이 남아 있으므로 수군으로 전투하기를 결심합니다. 그럼에도 수군들의 출정 반대하고 이순신은 막사를 모두 불 지르고 전군 출정을 명령합니다. 왜군의 전라도 지역으로의 진격을 막기 위해 배가 항해하기에는 비교적 폭이 좁고 물살이 강한 울돌목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갑니다. 그러나 선두로 나가는 이순신의 대장선 뒤로 따로 오는 판옥선은 단 한 대도 없었습니다. 머뭇 거리는 12척의 배를 뒤로하고 홀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합니다. 울돌목의 빠른 조류 때문에 일본의 배들은 휘몰아치며 침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순신은 일본 배보다 비교적 높은 판옥선을 이용하여 백병전과 화포로 일본군을 위협하지만 역부족이었으며 더욱이 공포에 질린 조선 수군이 자결을 시도하고 이순신의 대장선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다른 전술을 지시하고 모든 화포를 집중시켜 묶인 배를 탈출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치열한 싸움 속에서 시간은 정오를 넘기고 대장선의 치열히 싸우는 모습에 뒤쳐졌던 판옥선들도 합류하게 됩니다. 물살이 회오리처럼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배끼리 부딪히는 충파가 이어지고 백병전에 돌입한 이순신 앞에 왜군 구루지마는 무릎을 꿇게 됩니다.
한국 역대 영화 관객수 1위에 기록에 빛나는 1,76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압도적인 해상 전투씬으로 통쾌함과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징비록 기록에 의하면 일본군의 총 함대 숫자는 300여 척 이었습니다. 고작 12척의 판옥선으로 전투를 치르고 승리까지 얻은 이순신 장군의 용맹함은 후대에까지 위대한 업적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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